내밀적 시정의 풍경 -미술평론가 이일
흔히 공예라고 했을 때 그것은 각종 장식용구를 만드는 작업으로 생각한다. 금속공예 분야를 볼 때, 그것은 재료 또는 소재가 금속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재질의 특성을 작업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활용하게 된다. 여기에 생활에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능적인 측면이 부합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전통공예였다.
그와 같은 전통공예의 틀을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공예가’로서의 입장을 부정하는 듯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할 때 공예 작품을 항상 고정된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지극히 편협한 판단을 초래할 수 있다. 즉 공예라는 제한된 개념으로부터 탈피함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김승희의 작업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김승희는 전통금속기법과 공예관을 배운 작가로서 그동안 생활 속에 쓸 수 있는 공예품을 제작해왔다. 그러나 1987년 개인전 이후 그는 지금까지 공예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조형적 도전을 실행하고 있다. 실제로 김승희 자신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조형 오브제’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명하다. 즉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의 실용성을 떠나. 그 자체로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조형세계를 구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결과 김승희의 작품은 발상이나. 구상에 있어 당당하게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자신의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는 김승희와 대화에서 특히 되새겨지는 한두 가지 말이 있다. 그의 관심은 ‘공예기법’의 문제에서 ‘표현’의 문제로 이행되었다는 것이고 조형적 요소 중에서는 대비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 대비에는 형태에 있어서 각과 원, 색채에 있어서는 청과 적의 대비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의 결과적인 은유로써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비와 갈등의 요소들을 그의 조형적 구성력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데 이 조화의 세계에는 작가 자신의 은밀함을 지니고 있다. 그 은밀한 조화의 세계, 그것은 작가 자신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실내 정물과 결합시킨다.”라는 매우 함축적인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정물속의 자연’ 또는 ‘정물화 된 자연’ 아니면 ‘자연의 정물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연과 정물이 자연스럽게 복합되어 있다. 그가 주로 다루고 있는 모티브들은 그릇, 화병, 잎사귀, 나뭇가지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적 대상들이다. 김승희 자신은 그 모티브를 조선민화 중의 하나인 그릇 그림에서 얻었다고 한다. 조선 민화는 일종의 정물화이며 그것도 대상의 소박한 단순화를 특징으로 하는 그림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민화적 특성을 어떻게 ‘오브제로서의 정물’로 되살아나게 하느냐 인데 바로 여기에 김승희 작품세계의 열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정물화 된 자연’은 무리 없이 구사할 수 있는 그만의 예술적 표현력의 문제라고 본다. 형강적인 측면에서 볼 때 김승희가 다루는 대상은 단순 소박한 형태로 환원된다. 즉 기하학적 패턴의 구성적 ‘입체 오브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는 민화 고유의 감성과 현대적 조형성을 단순한 기하학적 요소로 복합하면서 대비와 조화의 논리로 ‘투명한 공간’(이 표현은 김승희 자신의 것이다)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김승희는 그동안 자신의 작품에 포관적인 표제로써 <그릇이 있는 실내풍경>을 즐겨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릇’과 ‘실내’와 ‘풍경’, 언뜻 보기에는 서로 간에 별로 연관성이 없는 대상들이다. 그것이 김승희의 작품에서는 하나의 통합된 세계로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바로 그의 작가적 역량의 폭을 보여주는 면이다.
그의 작가적 역량이나 조화 구성력에는 그가 다루는 금속에 대한 독특한 방법들도 힘이 되고 있다. 작가 자신의 메모를 일부 인용해보자. “소재는 금, 은, 적동, 황동, 연철을 주고 사영하였으며 금속을 반짝이게 하거나 자연의 녹을 의도적으로 입힌 검자주색이나. 파스텔 조의 파랑, 주황들의 색감들을 조화시킴으로써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면서도 금속의 특성이 나타나. 좀 더 새로운 조형미를 표현해보려 하였다.” 여기에 언급한 금속 고유의 질감은 그 자체가 이미 공예의 한계를 넘어 작품마다 조형 오브제로서 특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를테면 녹슨 구리의 발색은 그 녹과 함께 세월의 깊이는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김승희는 그의 금속공예 기법을 활용하여 그가 표현하려고 하는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하는 <풍경> 시리즈들도 작가의 마음과 정서로 여과된 지극히 내밀적 풍경이라고 본다. 그의 풍경에서 정물과도 같은 은밀한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는 시공을 초월한 공간이 있으며, 이 작가의 따뜻한 정서가 배어있다. 마치 옛 동산의 추억과 함께 되살아나는 실내악과도 같은 그윽하면서도 향수어린 시정이라고나 할까.
이번이 여덟 번째가 되는 작품전은 지난 1991년에 이은 4년만의 것이다. 그리고 이 개인이 ‘95 석주 미술상 수상을 기념하는 자리이기에 그 의의는 각별하다. 또한 김승희가 이 작품전을 통하여 더욱더 ’자연‘에 가까워지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의욕적인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또한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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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적 시정의 풍경 -미술평론가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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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김승희 공예가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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